지역개발
분배사업과 이동이 어려운 시골지역 이동진료,
그리고 어린이사역을 통해 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함께 해주세요.
①전인적 지원사업
헤브론의료원은 심장 수술을 받은 아동 관리 프로그램인
CAP(Care After Program)의 운영을 통하여 캄보디아 지역사회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 건강 관리를 포함한 전인적 지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년 전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조영술로 심장판막확장시술을 받은 Ny를 찾아갔습니다. 치료 받기 전부터 초등학교 입학을 하여 공부를 시작했는데 하루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힘든 몸으로 중단없이 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Ny의 언니도 공부를 특별히 잘 하는 아이라고 엄마는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아빠가 몇 달 전 오토바이 운전 중에 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에 일부 마비가 왔습니다. 아직 어린 두 쌍둥이 딸을 포함하여 여섯 식구의 생계도 책임져야 하고 잘 걷지 못하는 아빠도 보살펴야 하는 엄마의 어깨는 무겁습니다. 하나의 짐을 벗고 보니 또 다른 짐이 어깨 위에 매달린 것입니다. 간절히 소원했던 둘째 딸 Ny의 심장병은 수술을 받고 건강해졌지만, 아빠가 다리를 다친 후 여섯 식구의 생활을 맡아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2018년 4월 6일>
오랜만에 만난 Ny는 많은 변화가 있어 보였습니다. 숨이 차는 등 건강이 안 좋아 친구들과 노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고 걱정했던 Ny와 부모님은, 헤브론병원에서 조영술을 받은 후 예전과는 다르게 친구들과 어울려 고무줄 놀이와 배드민턴도 치는 등 밝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1살 Ny는 체중 31kg, 신장 132.5cm이며 사과 등 과일과 야채는 잘 먹지만 고기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단백질을 꼭 섭취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다양한 음식을 섭취할 있도록 부모님과 Ny에게 영양소가 적힌 종이를 건네며 설명해주었습니다.
현재 5학년인 Ny는 주로 걸어서 학교를 다니지만 가끔씩 자전거를 이용하여 등 하교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Ny는 캄보디아의 문학 작품과 사회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최근에는 영어 수업도 등록하여 재미있게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을 공부하는 것을 어려워해 정규 수업 외에 따로 수업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니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문학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고로 다리를 다치신 아빠는 공사장에서 일꾼들에게 밥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 일정한 직업이 아닙니다. 엄마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한 달에 약 170불을 벌고 있습니다. Ny에게는 19살인 언니가 있습니다. 언니도 공부를 매우 잘 하는데 나중에 Ny와 같이 문학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근처에 교회가 없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이 가정에 복음과 관련된 기독교 책을 나눠주고 간단한 설명을 해 준 후 돌아왔습니다.


프놈펜에서 4시간을 차로 달려 가서 뜨봉크몸에 도착했습니다. 큰 길에서 만난 아빠의 오토바이를 따라 산 길로 들어선지 한참이 되었습니다. 울퉁불퉁한 길 때문에 차 안에서 서로 몸을 부딪히며 비명이 나올 즈음 왠 할머니가 달려들며 차를 세웁니다. 작고 마른 할머니는 우리 차를 향해 손을 합장하며 청량한 하늘 만큼이나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까르르 까르르 이상한 웃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바로 병원에서 만났던 Heak의 할머니였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할머니와 온 가족이 달려나와 우리를 안고 흔들며 똑같이 까르르 까르르 명랑 웃음을 터트립니다. 이곳의 환영 인사법인가 봅니다. 우리는 마치 보고 싶었던 옛 가족을 만난 것 같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런 가족의 사랑 속에서 산속의 Heak은 빨리 건강을 회복했고 총명하게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2년 전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작년에 학교에 입학을 했고 이제 2학년이 되었습니다. 까만 밤하늘에 유독 별이 선명한 이 산골 마을에서, Heak은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날 것을 확신하며 감사했습니다.
<2018년 5월 4일>
2015년 7월에 힘든 수술을 잘 이겨낸 Heak은 매일 아침 집에서 6시에 나와 1시간을 달리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등 하교를 해도 피곤해 하지 않고 재미있어 합니다. 먹거리가 풍부한 곳에서 살고 있는 Heak은 CAP팀이 전해준 심장 수술을 받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가 적혀 있는 종이를 보고는, 자신이 거의 다 먹는 거라며 자랑을 합니다. 편식을 하지 않아 야채나 과일 고기 등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고 있어 어느덧 체중 22kg에 신장 129cm가 되어 놀러 온 옆 집 아이들보다 큰 아이가 되었습니다. 평상시에도 성실히 공부하고 있는 Heak은 반 아이들 40명 중에서 8등으로 열심히 공부하며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고 있습니다. 국어 시간에 배운 글을 술술 읽고 내어준 산수 문제들을 골똘히 생각하며 풀지만 요즘 들어서 점점 어려워지는 수학 수업 때문에 고민이 많은 Heak입니다. Heak은 농사를 하며 생활 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과 가족들을 보면서 농부 외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합니다.
함박 웃음을 지으며 CAP팀을 반겨주시던 어머니와 Heak이 산수 문제를 헤매고 있을 때 귓속말을 해주면서 도와준 14살인 형을 포함해, Heak은 웃음이 많고 단란한 가정 속에서 밝게 자라고 있습니다. 20살인 누나는 프놈펜에 있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살림을 돕고, 부모님은 주로 농사를 지어서 가족들이 먹을 쌀을 재배하고 가끔씩 시장에 쌀을 팔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부터 4km나 떨어져 있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교회가 문을 닫게 되면서 예수님을 알게 된 가족들이 하나님과 멀어질까 걱정이 됩니다.


<2017년 11월>
2016년 헤브론병원의 소문을 듣고 찾아 와서 수술을 받을 때까지, 9년 동안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불안 했습니다. 헤브론병원에서 수술 받는 딸을 위해 엄마는 알지도 못하던 하나님께 딸을 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딸은 살아 났고 건강해졌습니다. 이제는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딸을 바라보며 엄마는 행복합니다. 3학년인 Tevy는 열심히 학교에 갑니다. 그러나 아직 공부가 많이 부족 합니다.
<2017년 11월>
엄마의 가게입니다. 오토바이 기름을 파는 길가에 있는 이 노점은 엄마의 소중한 재산입니다. 가게를 비울 수 없어서 길가에 앉아 그들이 살아 가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빠는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인데 건강해진 하나 뿐인 딸 아이 Tevy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합니다. 교복 위에 가방을 메고 일어서는 딸을 보며 엄마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가득합니다.
<2018년 1월>
외동딸 Tevy가 심장병을 치료 받고 점점 건강해져서 학교에도 잘 가고 이제는 가정의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거리 청소원이고 엄마는 오늘도 큰 길가에서 나무 선반 진열장 위에 오토바이 오일병을 줄 세워 놓고 오고 가는 손님을 기다립니다. 오늘은 가게를 헤브론병원 직원에게 맡기고 우리를 Tevy네 집으로 안내해 달라고 해보았습니다. 모녀를 따라 들어간 곳은 가난한 살림살이를 하는 빈민가입니다.
마당 안에는 찌그러지고 비틀어진 빈 방 문짝 마다 녹슨 자물통이 하나씩 걸려 있고 흔한 나무 한 그루 깨끗하게 서 있는 공간도 없습니다. 골목 마지막 집인 이 곳에는 낮 시간에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Tevy가 학교에서 돌아 와도 집으로 혼자 들어와 있기에는 너무 적적하고 어두운 곳입니다. 이 쪽방들 중에 하나가 Tevy 가족의 보금자리입니다. 방 앞에는 잡풀이 무성한 웅덩이와 공터가 있어 모기가 번식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몸을 잠시 걸치고 앉을 자리도 없는 곳에 서서 아이의 부족한 학교 수업을 돕는 방법을 의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영양을 공급해 주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었지만, 항상 무엇이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늘 삶이 바쁜 이들에게 식품의 영양가를 논하는 말은 늘 사치라고 자책이 됩니다. 그저 하루 계란 한 알 만이라도 꼭 먹여 달라고 부탁할 뿐입니다.
마침 학교 담임이 개인 과외 지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집에 혼자 둘 수 없는 아이에게 오후에 담임 선생님의 지도를 받게 하고 부족한 수업 능력을 키우면서, 엄마의 일이 끝날 때까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방향을 잡고 돌아왔습니다.
<2018년 5월 8일>
CAP팀은 이번 가정 방문을 통해 Tevy에게서 많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개인 과외 지도를 연결해주기 전인 1월 달에는 35명의 석차 중 34등을 했습니다. 이번 가정 방문 때에 석차를 확인해보니 35명의 아이들 중에서 27등을 하며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성실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Tevy는 개인 지도를 받은 후부터 정규 수업을 포함하여 하루에 아침과 점심 오후 총 3번 학교를 갑니다. 500m 떨어져 있는 학교를 매일 15분씩 걸어 다니며 아침 보충 수업에는 국어와 수학을 배우고 있고 오후 수업에는 캄보디아 학교의 정규 수업을 배우고 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영어 보충 수업도 듣는 등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심장 수술을 받은 아이가 감당하기에 힘든 스케줄일 수 있지만 Tevy는 수업이 없는 시간에도 길가에 있는 엄마 가게에 앉아 배운 내용을 복습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글자를 읽는 것이 많이 힘들었던 아이였지만 읽기 능력이 많이 향상되면서 요즈음은 가장 재미있는 수업 시간이 국어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사회 수업 시간에 이해력이 부족하여 수업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Tevy입니다.
Tevy의 가정은 영양가 있는 음식을 아이에게 골고루 먹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습니다. 이제는 아이의 영양에 대한 중요성을 아신 부모님은 비록 어려운 가정 형편이지만 아이가 세끼를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계십니다. 사랑을 많이 받으며 건강히 자란 Tevy는 체중이 20kg이 되었습니다. 키와 체중이 또래 친구들과 비슷해 보일 정도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습니다. 비록 교회가 너무 멀어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이 가정은 Tevy와 함께 성경을 읽으며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단란한 가정입니다.




<2017년 11월>
3년 전에 심장 수술을 받고 건강이 좋아졌지만 아직 학교 문턱에도 들어가 보지도 못한 Eng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이 가족은 베트남에서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아직 캄보디아 국적이 없기 때문에 정규 학교에 입학 할 수 없습니다. Eng은 아이들 처럼 학교에 가고 싶습니다. 아빠는 오토바이에 연장을 싣고 다니면서 선풍기 등 가전 제품을 고치는 사람입니다. 아빠의 능력으로는 막내 딸의 학교 공부를 도와줄 길이 없습니다.
( 좌: 도심의 빈민가는 한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습니다.)( 중앙: 엄마는 건강해진 막내 딸이 자랑스럽습니다.)
(우: 집들 사이에 확실한 벽도 없이 모여 사는 사람들은 누가 가족이고, 누가 이웃인지도 확실한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Eng의 엄마가 25년 전 혼자 캄보디아로 내려 왔고 1년 후 같은 베트남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여 딸 셋을 낳고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정 살림이 어렵고 힘든 것을 보며 그 동안도 삶이 고단 하고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 됩니다. 이 가정의 막내 딸이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가난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고 아기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지내던 중에 6살이 지나서 헤브론병원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헤브론 심장센터에서 수술을 받고 아이는 참 건강해졌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가야 할 나이의 어린 아이들이 함께 노는 빈민가 골목은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 오지 않고 아무도 이 어린이들의 교육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일거리를 찾아 밖으로 나가고 골목 속에서 아이들은 이 집 저 집을 넘나들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막내 딸 Eng을 학교에 보낼 방법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정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시민권을 가지는 방법 밖에는 없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어려운 그들은 아이의 교육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막내 딸 Eng이 학교에 입학하는 가슴 벅찬 날이 왔습니다. 공립 학교에는 갈 수 없지만 캄보디아 글과 영어 정도를 가르쳐주는 사립학교는 여기 저기 많이 있어서 입학이 가능 했습니다. 입학 하던 날 가정을 방문하여 Eng에게 공부가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까만 눈을 깜박거리며 질문의 의도를 모르는 아이는 "쩡" 하며 하고 싶다고 대답 합니다. 마침 자그마한 학교가 큰 길가에 있고 학비도 3달 60불에 캄보디아어와 영어를 가르칩니다. Eng을 등록시키고 교복을 사서 입혔습니다. 두 언니들이 동생의 옷을 입히고 매무새를 만져 줍니다. 두 언니들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지만 다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어와 캄보디아어를 다 사용하며 그런대로 불편없이 사는 듯 합니다. 언니들의 마음이 동생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지만 마음으로는 부러움도 있어 보입니다. 모든 가족을 대표하여 이제 막내가 학교 교육을 받고 캄보디아에서 미래를 개척해 가는 이 가정의 기수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018년 3월 23일>
2번째 가정 방문을 다녀온 후 3달이 지난 오늘 프놈펜 외곽에 있는 Eng의 집을 다녀왔습니다. Eng의 학교 생활은 매우 즐거워 보였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5명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 하루를 보냈고 있다고 했습니다. 학교를 다니게 된 지 3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공부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 Eng은 자음을 쓰고 읽을 줄 알았고 1~9까지의 숫자도 잘 세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익숙하지 않은 캄보디아어를 배우기 위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Eng을 잘 보살펴주고 캄보디아어를 할 줄 아는 두 언니들이 있기에 Eng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ng은 체중 17kg, 신장 114cm으로 또래인 10살 아이들보다는 작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Eng이 자랄 수 있도록 엄마와 언니들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적힌 종이를 나눠주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Eng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엄마와 언니들은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집을 팔아야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집에 4000불 정도 되는 빚이 생기게 되었고 한 달에 이자를 400불을 내야 하지만 이자를 갚을 능력이 없어 힘든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전기 기술자인 아빠는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하루에 간신히 7불을 벌어서 한 달 이자 값인 400불을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고민 끝에 집을 팔기로 결정 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Eng의 학업 환경이 마음에 걸리는 가족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베트남 국적을 가진 Eng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Eng이 공부하기를 원하는 가족들은 고민한 끝에 Eng의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기로 했습니다. 한 달 월세로 200불을 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Eng의 학업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ng은 하나님께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는 기도를 한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아가는 이 가정에 행복이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2018년 6월 4일>
6개월 전 캄보디아 학교 형태의 학원에 입학을 했던 Eng을 만나 보았습니다.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가 요즘 자주 피곤해 하고 건강이 전보다 좋지 못하다고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와서 검진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식사를 할 때 야채를 골고루 잘 먹으려 하지 않는 작고 약한 Eng을 위해 식품의 영양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Eng이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엄마와 함께 찾아보고 의논해 보았습니다. 베트남 아이로 태어나 8세에 학교에 들어간 Eng은 학교생활을 좋아하고 재미있어 한다고 합니다. 어려운 캄보디아 6글자를 잘 익혀가고 있으며 선생님의 말씀도 잘 이해하고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동안 배운 학교 공부에 대해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는 지를 확인해 보았는데 전보다 훨씬 캄보디아어를 잘 알고 있으며 질문에도 대답을 잘 합니다. 최근에는 중국어를 배우는 언니와 함께 중국어에도 관심을 보이는 등 학습의욕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고 합니다. 엄마는 이런 Eng의 배움의 욕구를 더 격려하기 위해 화이트보드를 마련했고 예쁘게 벽에 걸어 주었습니다.



<2017년11월>
Channy는 5년 전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이제는 건강한 14세 소녀가 되었습니다. 수술 후 회복이 잘 되었고 현재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건강도 좋아졌고 공부에 관심도 많고 성격도 밝습니다. 이제는 영어도 시작했답니다. 5년 전 한국에 가서 함께 수술 받고, 함께 한국 병원에서 입원하고 있던 수술 동기생 환자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해 내며 그 친구들을 보고 싶어 합니다. 큰 수술 후 기억력에 문제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건강하게 학교 수업을 받는 Channy에게 어려움이 많지 않아서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4남매 중 외동 딸 Channy의 건강을 많이 걱정 했던 가족들은 Channy의 지금의 모습을 보며 감사해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효도 하는 행복한 가족입니다. Channy의 할아버지는 아주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습니다. 건성으로 보이는 피부병으로 목에서 발까지 피부에 가려움도 많고 피부가 성한 곳이 없습니다.
병원에 돌아와 처방을 받고 약을 받아 다시 찾아갔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지내고 보니 피부병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2017년 12월 24일 성탄절 날 이동 진료를 Channy네 마을 학교로 갔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성탄절 행사에 함께 했습니다. 율동을 하고 캐롤을 부르고 교실로 들어가서 여러 종류의 크래프트에 참여하며, 성탄절 선물을 가슴에 가득 안고 가는 아이들은 매우 즐거워 보였습니다.
<2018.04.24>
올 해 9학년이 된 Channy는 47명의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15등을 하는 등 공부를 매우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Channy는 아침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수학, 물리, 화학 보충 수업을 듣습니다. Channy는 YLP라는 프로그램에서 영어 수업을 받는데 아이들 중에 가장 성적이 높고 우등생으로 인정받아 상장을 받는 등 공부에 대한 열정이 매우 높습니다. 마음도 예쁜 Channy는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하며 그들을 돌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밥을 잘 먹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 하는 Channy가 걱정 된다고 말합니다. 편식을 하진 않지만 양이 적은 Channy에게 심장 수술을 받은 사람이 꼭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가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주고 잘 먹을 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Channy에게는 2명의 오빠와 1명의 남동생이 있습니다. 첫째 오빠는 21살이고 현재 3년제 대학에서 전기 기술을 공부하고 있고 둘째 오빠는 18살 12학년, 가장 어린 남동생은 11살 6학년입니다. 부모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쌀을 산 후 시장에 팔아서 생활을 하고 있고 집 옆에서 30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습니다. Channy는 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며 바르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Channy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Channy의 가족들 모두가 하나님을 믿기를 소망하며 복음을 전한 후 돌아왔습니다.



<2017년 5월>
4남매 가정에서 태어난 막내는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Sreylis의 집은 대나무로 엮은 마루에 함석으로 벽을 세운 임시 집입니다. Sreylis의 아빠는 하루 5불 정도의 수입으로 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와 3살, 4살의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모토를 끌고 다니면서 손님을 태우는 아빠는 가족들의 생활이 날마다 걱정이 됩니다. 주일마다 집 근처로 한국 선교사님이 와서 예배를 드리는 곳이 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교회에 가서 Sreylis가 심장 수술을 받고 다른 아기들처럼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2017년 9월>
현재 Sreylis는 생후 3년 3개월이 되었습니다. Sreylis는 지난 5월 헤브론병원에 온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팀에게 심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전에 9.5kg이었던 체중이 지금은 12.5kg입니다. 자주 먹고 모든 사람에게 인사도 잘 합니다. 전과 다르게 아주 예쁜 미소도 짓고 춤도 보여주며 잘 뛰어 다닙니다. 하지만 며칠 전 아빠가 건축 자재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오른쪽 발가락을 절반 정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 현재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구는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많습니다.
<2018년 1월>
성탄 특집의 주인공 Sreylis의 가정이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리한 막내 딸 Sreylis의 심장병이 따뜻한 손길들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가정의 큰 고민이 해결되었습니다. 막노동을 하면서 4남매를 키우는 아빠의 어깨는 늘 무겁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은 그의 큰 희망입니다. KBS TV 어꾼 헤브론이 방영되는 1시간 동안 엄마의 무릎 위에 앉은 Sreylis는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합니다. 어떻게 어린 아이가 이렇게 집중할 수 있을까 놀랍기만 합니다. 활짝 웃는 엄마 아빠의 얼굴에서 온 가족의 내일을 기대해 봅니다.
<2018년 3월13일>
위중했던 심장병 수술을 받은 아이들에 대한 헤브론 선교사님들의 아이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큽니다. 더구나 한번도 실망시킨 적 없고 그렇게 맑고 깨끗한 미소로 답례하는 Sreylis의 모습에 선교사님들의 묵은 피곤은 눈 녹듯이 녹아 내리는 것 같습니다.Sreylis의 집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4남매가 있는 다둥이 가정입니다. 장남은 11세로 5학년, 차남은 9세 3학년입니다. 장녀인 언니는 4세로 체중 16kg, 신장 102cm인데 체중 14kg, 신장 92cm인 막내딸 Sreylis와 친구로 보일 정도로 비슷해 보였습니다. Sreylis와 Sreylis의 언니가 서로 함께 ‘머리 어깨 무릎 발’ 노래를 부르는 재롱도 보고 Sreylis가 1부터 10까지 숫자를 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재롱에 답례품으로 미리 준비했던 선물과 과자를 나눠주었습니다. 그걸 받은 4남매 아이들은 모두 행복하게 활짝 웃었고 분위기는 너무나도 화기애애하게 바뀌며 기쁨이 가득 했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많은 가족 수만큼 이 가족의 행복 지수도 높아 보였습니다. 아빠는 41세로 아직까지 일정한 직업이 없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공사장을 찾아 다니며 일거리를 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에 근로자로 가는 길을 찾아 보았지만 어학 시험을 통과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가족을 위해 아빠의 일자리 구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듭니다.엄마는 공장에 다니며 한 달 130불 정도의 수입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양육 하기엔 이 돈은 너무 적은 금액입니다. 반찬을 사기엔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어서 이 가족은 쌀을 주식으로 먹습니다. 한 달 쌀이 100kg라는 말에 놀라는 우리를 보며 자기들도 믿기 어렵다고 합니다. 쌀만 먹는 것에 대해 싫을 법도 한데 반찬 투정 한 번 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라는 아이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Sreylis가 요즘 부쩍 우유를 좋아하여 10불을 주고 사온 우유 1박스를 3일에 다 마셔버린다고 하는 엄마의 하소연을 들으며, 행복한 가정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눈 후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돌아왔습니다.



<2017년 7월>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때 아기에게 심장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헤브론병원에서 아기가 12개월이 되는 2017년 5월에 심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You는 심장병으로 늘 힘들어하고 많이 울기도 하며 1년이 지나서도 체중이 5kg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5kg의 아기의 심장을 수술하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며 수술진에게도 부담이 되는 어려운 수술이었습니다. 아빠는 일정한 일 없이 남의 집에 농사를 돕거나 들의 나무를 베는 일을 하며 부모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제대로 지어진 집도 아니고 나뭇잎으로 대충 지붕과 벽을 치고 움막 같은 집에서 가난한 생활을 합니다.
<2017년 9월>
걱정이 많았던 저체중아 You가 심장 수술을 받고 4개월이 지난 후 집으로 방문했을 때 너무나 달라진 아기를 보고 모두 감격을 했습니다. 힘든 수술을 잘 견디어 낸 아이는 체중이 7.5kg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울지도 않고 먹는 것도 잘 먹고 혼자 계단을 올라가려고 노력도 하며 뛰고 잘 걸어 다닙니다. 누구에게나 잘 와서 안기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되었습니다. 심장 수술 후 달라진 놀라운 변화를 목격하고 하나님께 감격하며 감사했습니다.
<2018년 1월>
아빠와 함께 병원에 온 You는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걷고 뛰는 모습이 즐겁고도 경쾌해 보여서 보는 이의 마음도 즐겁게 합니다. 항상 일을 찾아 각 도시로 다니느라 아들과 함께 살아보지 못한 아빠가 잠시 가족과 함께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엄마가 공장에 취직하여 재봉을 배우는 중이라 육아를 아빠가 맡게 되었습니다. 숨 쉬기가 힘들고 혼자 놀지도 않던 아들은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제어하기 힘든 상대가 되었습니다. 아직 너무 젊은 부모는 기술도 지식도 부족하여 지속적인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삶의 무게는 늘 무겁습니다. 이 가족의 삶이 나아지고 You도 아프지 않고 잘 자라서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



카톨릭 돈보스코 학교 10학년에 다니는 16살 난 소녀가 뽀이펫 태국 국경에서 헤브론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자주 숨이 차는 것을 느꼈지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본 일은 없었습니다. 학교에 한국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학생들을 검진 하셨는데 그 때 의사 선생님이 “너는 심장에 문제가 있으니 헤브론병원을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소개로 헤브론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더 이상 숨도 차지 않고 훨씬 편안해졌고 건강해진 몸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 IT를 전공하고 싶다고 합니다. 아빠 엄마가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데 유난히 똑똑해 보이는 학생이였습니다.
<2017년 9월>
Sreykleong에게 스스로 자기 소개서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매우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유창하고 잘 정돈된 글로 가족들을 소개했고 어떻게 헤브론병원을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미래에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잘 정리하여 써 내려갔습니다.


<2017년 6월>
다운증후군과 심장병을 함께 가지고 태어난 아기입니다. Sunsothea는 2017년 6월에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후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습니다. 아빠가 집을 나가서 엄마 혼자 아기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서양 사람의 집에서 가사 일을 도우며 살았는데, 혼자 앉지도 못하는 다운증후군 아기가 생긴 후에는 1년이 넘도록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골 마을 집에 세탁기를 놓고 빨래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비용을 받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기 때문에 일을 나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가끔은 캄보디아 헤브론교회를 찾아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Sunsothea네 집을 갔습니다. 좁고 오래된 골목 안에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보입니다. 좁은 골목에는 양쪽으로 오래된 캄보디아 전통 집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1층에 가게를 열고 물건을 팔거나 음식을 파는 이들은 오고 가는 사람들과 정겨운 인사를 나눕니다. Sunsothea의 집은 이층에 있습니다. 계단은 좁고 어둡고 가팔라서 한낮에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아기는 수술 후 건강이 더 좋아져서 혼자 앉을 수 있고 다리 힘도 생겼습니다. 더 노력하면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생깁니다. 다운증후군을 함께 가지고 있어서 심장수술 후에도 여전히 아기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기를 돌보는 엄마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있습니다. 아기를 위해 여러 종류의 죽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가정에 딱한 사정을 안 집주인은 방 값을 다른 사람보다 낮춰주었습니다. 엄마는 가끔 불규칙적으로 나오는 서양 가정의 주방일을 도우러 나갑니다. 시내 한복판의 현지인 삶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집을 찾아와 잠시 머물고 가는데, 방 하나와 작은 부엌 공간이 불편해 보이는 집이지만 학생들은 이 언니의 따뜻한 마음과 요리 솜씨를 좋아하여 친척집을 오듯이 자주 찾아 오나 봅니다. CAP팀이 방문했던 날도 한 여학생이 와 있었습니다. 잠자리도 한 곳에서 같이 자고 외출을 안하는 시간에는 아기도 데리고 놀아줍니다. 이런 일시적으로 생기는 수입이 지금 Sunsothea와 엄마를 살아가게 하는 수입의 전부입니다.
기독교로 종교를 개종하면서 시골에서 불교에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삭발을 어머니를 위해서 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한 번 움직이려면 아기 살림 용품이 함께 움직여야해서 시내 안에서도 지불하는 툭툭이 비용이 10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고 합니다. 엄마의 요리 솜씨와 친절한 성격 그리고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불어 실력을 발휘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올 수 있을지 딱한 마음으로 격려하며 엄마의 어깨를 안아 주었습니다.


현재 14세가 된 San이 심장병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3살 때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가난하여 치료를 받을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서 3학년 때 휴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글자를 읽고 쓰지 못합니다. 헤브론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고 온 동네 아이의 가족으로부터 소식을 듣고서 San도 헤브론병원을 찾아왔고 이번에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San은 3남매 중 둘째이며 15세의 형이 있는데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을 중퇴하고 프놈펜에 가서 막일을 합니다. San도 건강해지면 곧 일자리를 찾아야 할지 모릅니다.

<2017년 9월>
San의 부모는 집도 없고 기술도 없습니다. 어느 부자의 땅과 소를 돌보며 밭 가운데에 있는 비도 가릴 수 없는 움막에서 살아갑니다. 들에 보이는 것을 뜯어서 반찬을 만들고 빗물로 식수를 하고 집 옆에 있는 웅덩이의 황토색 물에서 목욕을 합니다. 이 가정이 받는 보수는 일년에 새끼 소 2마리 입니다. 아빠와 아들은 무지와 가난을 대물림하며 심장병의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꿈도 희망도 없는 가정으로 보이지만 San이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다른 아이들처럼 복음을 듣고 수술 후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희망찬 미래를 살게 될 것입니다.
<2018월 1월>
2017년 9월 심장 수술을 받고 San의 건강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이제 건강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입원해 있던 그 시간들이 그에게는 오히려 좋은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심장 수술을 받고 수술 동기 어린이와 함께 생활할 때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날마다 사랑과 격려를 받았고,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며 함께 웃었습니다. 책도 보고 그림도 그려 보았습니다. 지금 San은 아무도 살지 않는 산자락에서 아빠를 도와 소를 돌보며 소와 함께 살아 갑니다. 남의 소떼를 치며 살아가는 산지기 부모의 품으로 돌아간 후 San의 삶은 다시 어둡고 우울해졌습니다. 얼마나 오래 씻지 못했는지 아이의 모습은 길에 구걸하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이 곳에는 깨끗한 물도 없습니다. 소들이 들어가는 웅덩이에 사람도 들어가 씻어야 합니다. 피부병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부모를 설득하여 지속적으로 학교를 다니게 했습니다. 부족한 수업을 보충해 주기 위해 학교 선생님과 연결을 갖고 더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엄마가 용단을 내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들어가야 오토바이도 없는 San이 학교도 가고 보충수업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마에게는 수업도 영양도 너무 사치스러운 말임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2018년 2월>
San이 다시 학교 공부를 해 볼 결심을 했습니다. 아무 준비도 못하고 3학년이 된 아이를 담임 선생님이 개인 과외 공부를 통해 지도하기 시작하였기에 CAP팀이 San의 공부 시간에 학교를 방문해 보았습니다. 오전에 정규 학교 수업을 11시에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에 다시 학교를 갑니다. 담임선생님은 San이 3학년에 들어와 있기는 하지만 이제 자음 몇 자를 익히기 시작한 초보라고 합니다.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많은 설명을 들려주기는 했지만 지금은 잘 이해를 못합니다. 대를 이어가는 무지와 가난을 끊어 내려는 노력이 가족들에게 너무 적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가르쳐보겠다는 선생님과 집과 학교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San이 뜨거운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공부하러 올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하며 격려하고 칭찬했습니다.
<2018년 3월 16일>
헤브론병원 사역 중에는 시골로 가서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검진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번에 가게 될 CAP팀에게 San이 다니는 학교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의 건강 검진을 요청해 보았습니다. 분교처럼 보이는 작은 학교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많이 어려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전 답사를 위해 San의 학교를 방문하고 담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학교를 둘러보는 중에 담임 선생님은 저희에게 아이들 성적표가 붙어있는 게시판을 손으로 가리킵니다. 게시판에는 San도 있었는데 성적이 전체 학생 17명 중 15등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공부에 관해서 시작 선에 서 있는 San이기에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고 CAP팀은 San의 이름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큰 박수를 쳤습니다. 학교에는 교실이 4개 있고 교무실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마친 선생님들은 벌써 자리를 떠났고 San의 선생님만 교실에 남아 계셨습니다. 치과, 안과, 소아과, 보건위생의 파트로 팀을 구성하여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 100명의 건강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계획을 알려드렸고, 교장 선생님과 의논한 후 저희에게 다시 얘기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며 교정을 나왔습니다.
고불고불한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마을에서 이장님 댁을 찾아가 마을 어른들의 건강 검진을 의논하고 San의 집으로 갔습니다. San과 함께 그 동안 지냈던 일상 얘기를 들었고 천천히 미세하게 변화되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San이 바르게 잘 성장하고 있는지, 영양 섭취는 잘 하는지 확인해보았습니다. San은 체중 37kg, 신장 149cm로 표준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건강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에게 San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영양에 대해 다시 한번 정보를 알려드리며 심장에 좋은 검은 콩과 쪼갠 콩을 주어 밥에 섞어 먹도록 권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잡곡밥을 먹지 않는 이들이라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2018년 6월 8일>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San 남매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인가도 없는 산 아래 움막에서 거주하는 것보다는, 마을로 내려가서 살아야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엄마의 생각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깨끗한 물 마시기와 동물들이 들어가는 웅덩이에서 목욕하지 않는 것은 조금 나아진 모습입니다. 이 가정의 생활 형편을 보면 영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너무 사치스러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CAP팀은 영양의 중요성에 대해 재차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인지, 아이가 음식을 골고루 잘 먹고 체중과 키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반년이 지나도록 수업에 진전이 없던 San이 드디어 오늘은 자음을 모두 쓰고 읽었습니다. 자기도 기쁜지 모처럼 웃어 보입니다. 항상 수줍고 자신이 없어서 대답도 잘 하지 않던 아이의 표정이 오늘은 전과 다릅니다. 모처럼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부끄러운 웃음으로 반응도 합니다. 그렇게 변화가 없던 San에게서 이제야 희망을 보았습니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옮겨왔지만 변화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2017년 9월>
Sovanary는 세 자녀 중 막내입니다. 아빠가 큰 공장에 물건을 납품하는 무허가 영세 공장에 다니며 일을 합니다. 전에 엄마는 공장에 나가 일을 해서 가정 살림을 도왔는데 심장병이 있는 아기를 낳고는 공장에도 못 가고 아기를 돌보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Sovanary는 이번에 매우 까다로운 DORV 수술을 받으며 병원을 긴장하게 했습니다. 수술 전 교수님들의 회의에서도 이 수술에 매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행히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 되었고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2018년 1월>
심장 수술을 받고 퇴원한 Sovanary가 일주일 후 병원에 잠시 입원을 했었습니다. 조금 심한 감기가 돌면서 심장 수술을 받은 1년 미만의 아기들이 폐렴을 앓는 등 여러 증세로 재입원을 하게 되는 일이 생겼고, Sovanary도 며칠 병원 신세를 지고 잘 회복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서 만난 Sovanary는 혼자 앉아 놀고 다리에 힘이 생겨서 잡아주면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친화력도 좋아서 이제는 낯도 가리지 않고 누구나에게 안기려 하고 전처럼 낯설어 울지도 않습니다.
Sovanary의 집은 새로운 택지가 조성되는 빨간 흙 길가에 있습니다. 시멘트 벽돌로 방 한 칸씩 나누고 길과 방 사이를 구분하는 것은 얇은 양철 문 하나입니다. 그래도 작은 방에 화장실을 넣었다고 월 50불의 집세를 내야 합니다. 전기세를 포함하면 60불입니다. 아빠는 세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부지런히 공장에 나가 일을 하며 월 200불의 월급을 받아 오지만,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에 맡긴 두 아이의 양육비를 보낼 힘이 없습니다. 시골에 있는 두 아들 소식을 묻자 엄마는 입을 열기도 전에 착잡한 얼굴 표정으로 닭 똥 같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립니다. 딸 아이의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 두 아들을 시골 할머니 댁에 맡기고, 잘 돌보지 못했고 생활비도 보내 주지 못한 엄마의 마음은 눈물 말고 다른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큰 아들은 12살이고 공부도 제법 하는데 눈이 잘 안 보인다는 말을 듣지만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못해준 미안한 마음에 엄마는 서러운 눈물을 흘립니다. 엄마에게 아들을 꼭 병원에 데리고 와서 시력 검사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고 건강 문제는 언제나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위로를 전했습니다.
<2018년 5월 22일>
지난 가정 방문 때에 기어 다니며 우리를 맞이해준 Sovanary는, 어느새 걸을 수 있게 되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미소를 방긋방긋 짓습니다. Sovanary는 하루에 110ml 우유를 10개씩 마시고 며칠 전부터는 이유식을 시작해 5kg이었던 몸무게가 10kg이 되었고 키도 75cm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건강히 잘 성장하고 있지만 성장발육기에 있는 Sovanary 연령대의 1일 식사량은, 우유 한 컵, 계란 1/5개 등 식사를 하는 것이 건강유지를 하는 것과 발육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Sovanary가 식사량을 늘려서 성장발육에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엄마에게 관련된 자료들을 알려드리며 설명해주었습니다. Sovanary가 더 성장한 후에 일을 시작하려는 엄마는 하루빨리 떨어져 지내는 두 아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살길 소망합니다. 시골에 있는 12살 3학년 오빠와 7살 1학년인 오빠는 성실히 공부 하며 할머니의 보호 아래에서 건강히 자라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다복하게 살 날을 기대하며 함께 기도를 나눈 후 돌아왔습니다.



<2017년 9월>
아주 먼 깡촌에서 헤브론병원에 찾아온 엄마가 있습니다. 차가 들어갈 수도 없는 산 속에서부터 큰 길로 내려와 프놈펜으로 오는 차를 타고 7시간 이상 왔습니다. 이제 26세인 엄마는 얼마전 오토바이 사고로 남편을 잃어버리고 하나뿐인 아들의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 헤브론병원에 왔습니다.
일거리가 없는 깊은 산 속에 살면서 의지할 곳은 없습니다. 아이는 혼자 있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서 엄마가 혈액 은행을 다녀오는 긴 시간 동안 울지도 않고 침대에서 내려올 생각도 하지 않고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산 속으로 엄마를 따라 되돌아가야 하는 Nara도 다른 아기들처럼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